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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필사의 손부림 2012. 9. 7. 05: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10&sid2=200&oid=020&aid=0002365276

왠일로 바른말로 시작하는가 했더니.

1. 검증은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하는 것 아닌가? 발끈해 측에 대한 검증은 얼마나 공평하게 철저히 이뤄지고 있나?

2. 안찰스 측도 해명을 회피하는 등의 자세로 문제를 스스로 키운 측면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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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손부림 2012. 5. 1. 08:2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10&sid2=200&oid=005&aid=0000510357

유명한 주자의 관서유감이라는 시이다. 자기를 돌아보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당나라 시인들이 사람의 감정이란 감정을 다 노래했다면 송나라 시인들은 이처럼 이치를 담고 있는 시를 즐겨 노래했다. '조그만 네모진 연못'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말한다. 사람의 타고난 본성이 원래 거울 같은 연못처럼 고요하고 맑아 저기 하늘빛도 거기 따가는 구름도, 외물을 그대로 비추어 낸다.

그런데 명리나 욕망으로 마음의 거울이 흐려진다. 그대로 두면 잡초로 가득 차는 경우도 있다. 시인은 말한다. 그렇게 맑은 상태를 회복하고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원천의 살아있는 물'은 바로 부단 없는 성찰과 반성을 의미한다. '대학'에서 말한 '밝은 덕을 밝히는 것'과 '날로 새로워지고 또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나, '논어'에서 '자기의 사욕을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이 시는 우리나라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퇴계가 '만권생애로 낙사 무궁하여라'고 노래했던 도산십이곡에 나오는 처눈대도, 이 시의 '천광운영'이란 말에서 왔고, '나는 청산이 멀건 죽 그릇 속에 거꾸로 비친 것을 좋아한다.'고 노래한 김삿갓의 시에도, 이시의 2번째 구절이 통째로 인용되고 있다.

정조는 주자의 시선집인 아송의 서문에서, '크게는 도체의 전체를 다 말했고 작게는 이치의 은미함을 분석한 것'이라고 이 시를 평가했다. 그러고 보면 그 도와 이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흐려진 마음을 회복하고 항상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같은 내 안에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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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손부림 2012. 4. 27. 18:08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4/h2012042621232524460.htm

만약에 야구가 없었다면


비도 그쳤고 바람도 멎었다. 맑고 푸른 하늘에 확 트인 시야라서 날아가고 날아오는 공도 꽤 날렵하게 눈에 잡힌다. 여전히 텔레비전 끼고 혼자 보는 스포츠를 즐기는지라 관중석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을 보며 그들의 부지런함에 감탄하는 나라지만 슬슬 예매하는 법이 궁금해지는 걸 보니 조만간 야구자에서 꽃술 흔드는 나를 만날 것도 같다.

야구가 뭐라고, 야구가 뭐기에, 경기에 이기면 휘파람을 불고 경기에 지면 병나발을 불었을까. 그러니까 아빠 얘기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인천, 하면 야구로 잔뼈가 굵은 도시이니 인천 토박이들만의 야구장 문화라는 게 분명 존재했던 모양. 그러니까 아빠 동료이며 아빠 공장 아저씨들 얘기다.

그때도 지금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정치 경제 문화 안팎으로 별별 사건들이 벌어졌을 테고, 그때도 지금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권력을 가진 자들과 돈을 가진 자들에 의해 우리 같은 소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더럽고 치사했을 터, 어렸던 나라지만 왜 진즉 나는 이해하지 못했을까.

고작해야 바지 뒷주머니에 소주 팩 꽂고 들어가 술에 취해가며 응원을 빙자한 채 고래고래 악을 쓰는 것으로 풀어내야 했던 아빠들의 갑갑한 속내를, 그 스트레스를, 초등학교 때 같은 반 남자애들이 청룡이나 청보 문양이 수놓인 야구 점퍼를 입고 등교하면 다가가 한번만 입어보자고 했던 게 나였다. 그거 사달라고 조르지나 말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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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손부림 2012. 4. 26. 20:33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20426.22027195351

용두산 공원에서 순수한 자연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무성한 수목조차 대화재이후 인간의 손으로 식재한 것이다. 용두산 공원에서 자연이라고는 태고 이래로 융기한 흙덩이뿐이다. 용두산 공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 숲을 벌채하고 길을  사방으로 세우고 광장을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용두산 공원은 건축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인공도 아니다. 철학자 게오르그 짐멜처럼 말하면 용두산 공원은 인간의 정신과 자연의 필연성이 극적인 합의로 이루어진 장소다. 자연과 인간, 서로의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곳에서 용두산 공원은 성립한다.

왜관이 설치된 이후 용두산 공원에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용두산 공원을 둘러싼 칼날 같은 긴장감은 몇 번이나 와해되었다. 공원의 파탄, 신사의 소실, 피란민촌의 대화재, 녹화가 그것이다. 이후 공원은 다시 건축을 시작한다. 위인의 동상과 기념탑의 배치, 직립 타워와 꽃시게의 건설이 그 긴장감을 되돌려 놓았다. 용두산 공원에서 느끼는 긴장감의 정점에 부산타워가 있다. 부산타워는 용두산의 깊은 땅 속에서 융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산정상부의 암반을 깎아 세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리의 에펠탑이 그러하듯 부산에 살고 있는 당신은 어디서든 부산타워를 본다. 감천 바닷가에서 까치고개를 넘었을 때, 송도 바닷가를 감싸는 산자락 모롱이에서도 갯바람을 맞고 있는 영도 비탈길에서도 직립의 자세로 서 있는 부산타워가 보인다. 사상에서 구덕산 중턱을 관통하는 터널을 지나 대신동 언덕길을 내려올 때 복병산 능선 너머로 부산타워의 얼굴이 보인다. 동서고가로를 달릴 때에도 차창 저 너머로 황령산 봉수대에서도, 해운대 달맞이고개 해월정 위에서도 부산항의 해무 위에 둥둥 떠 있는 부산타워가 보인다.

국제시장을 배회하다 일순간 지리 감각을 잃었을 때 눈을 들어 주위를 살피면 골목 그 끝에 부산타워의 하얀색 원통 기둥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항구의 등대처럼 흘립하고 있다. 만약 그때가 늦은 밤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부산타워는 칠흑의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색 몸 위에 무지개 불빛을 한껏 맞으며 여전히 그 골목 끝에 서 있다. 그때 부산타워는 고대의 신전처럼 엄숙하다.

원양에서 부산으로 돌아올 때에도 부산타워는 북극성처럼 우리를 부산으로 이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고 해도 검은 수평선 위로 한 점의 불빛으로 나타나 거기가 고향 부산이라고 알려준다. 부관페리를 타고 부산으로 올 때다. 온 밤을 꼬박 새워 현해탄을 건너는 페리선의 엔진 기관음은 여행자의 밤잠을 설치게 한다. 밖이 보이지 않는 선실에서는 엔진 소음만이 항해의 알리바이를 준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엔진이 멈춘다. 순간 칠흑의 바다는 심해에 가라앉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정적이 된다. 눈을 들어 시계를 본다. 새벽 3시. 그때 우리는 부산의 외해에 도착해 있다. 갑판에 나가면 짙은 산그늘을 배경으로 한 줄기의 불빛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부산타워의 전망대 불빛이다. 그때 부산타워는 부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따뜻한 침소에 양말을 벗고 깊은 잠에 든다. 배에서 내려 지상에서 120m 위로 솟구친 부산타워를 고속엘리베이터로 올라 전망대에 들어서면 부산이 발아래에 펼쳐진다. 손을 뻗으면 손긑에 닿을 듯 부산항이 가까이 보인다. 먼 바다 수평선 위에는 일본 대마도가 신기루처럼 둥둥 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부산타워는 부산의 시선이다. 롤랑 바르트가 파리의 에펠탑을 보는 대상이면서 보이는 시선'이며 '오브제이면서 시선', '능동적이면서 수동적인 완전동사', '시선의 양성'을 지닌 '완전한 대상'이라고 했다. 부산타워야말로 그렇다.

부산에서 부산타워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봄이나 여름, 가을이나 겨울이든, 계절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바다나 강, 산처럼 용두산 위에 서 있다. 부산에서 부산타워는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부산타워는 이미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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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의 손부림 2012. 4. 23. 04:59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4/h2012042221060376070.htm


부끄러운 '남녀 불평등 아시아 최악'평가


우리나라가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남녀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로 꼽혔다. 미국 뉴욕의 비영리재단 아시아 소사이어티가 최근 발표한 '아시아 여성 지위 실태보고서'는 한국의 남녀 평등 실태를 파키스탄 네팔 인도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했다.

한국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51% 수준으로 아시아에서 최악이다.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덜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81%는 물론이고 일본의 60%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난다.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도 1.9%로 일본의 0.9%에 이어 최저 수준이다. 세계 평균 21%는 꿈 같은 얘기이고, 호주의 9.3%나 중국의 8.5%에도 한참 모자란다. 여성 학력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면서 성평등은 여성 문맹률 80%가 넘는 인도와 비슷하다니 부끄럽다.

지난 달 OECD 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률은 54.5%로 조사대상 40개국 중 32위에 머물렀고, 남녀 임금 격차는 38.9%로 가장 컸다. 비저규직까지 포함하면 격차는 더욱 커져 남성의 절반 수준이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 가장 큰 이유다. 많은 여성이 30대에 출산과 육아 때문에 퇴직하고 40/50대에 재취업하면서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의 여성 임원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생색내기에 그친다. 과장급 이상 관리자도 14%에 불과하다. 전체 근로자의 40%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승진과 의사결정에서는 소외되고 있다. 공기업이 여성관리자 30%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적은 아직 미미하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출산과 육아 지원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면서 기업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 프랑스 스페인 등 일부 서유럽들처럼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법으로 정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아시아 최악 남녀 불평등 국가라는 불명예도 그렇지만, 진정한 남녀 평등을 실현하지 않고는 국가 경쟁력과 미래 비전도 없기 때문이다._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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