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필사의 손부림 2012. 4. 26. 20:33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20426.22027195351

용두산 공원에서 순수한 자연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무성한 수목조차 대화재이후 인간의 손으로 식재한 것이다. 용두산 공원에서 자연이라고는 태고 이래로 융기한 흙덩이뿐이다. 용두산 공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 숲을 벌채하고 길을  사방으로 세우고 광장을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용두산 공원은 건축이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인공도 아니다. 철학자 게오르그 짐멜처럼 말하면 용두산 공원은 인간의 정신과 자연의 필연성이 극적인 합의로 이루어진 장소다. 자연과 인간, 서로의 의지가 균형을 이루는 곳에서 용두산 공원은 성립한다.

왜관이 설치된 이후 용두산 공원에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용두산 공원을 둘러싼 칼날 같은 긴장감은 몇 번이나 와해되었다. 공원의 파탄, 신사의 소실, 피란민촌의 대화재, 녹화가 그것이다. 이후 공원은 다시 건축을 시작한다. 위인의 동상과 기념탑의 배치, 직립 타워와 꽃시게의 건설이 그 긴장감을 되돌려 놓았다. 용두산 공원에서 느끼는 긴장감의 정점에 부산타워가 있다. 부산타워는 용두산의 깊은 땅 속에서 융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산정상부의 암반을 깎아 세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리의 에펠탑이 그러하듯 부산에 살고 있는 당신은 어디서든 부산타워를 본다. 감천 바닷가에서 까치고개를 넘었을 때, 송도 바닷가를 감싸는 산자락 모롱이에서도 갯바람을 맞고 있는 영도 비탈길에서도 직립의 자세로 서 있는 부산타워가 보인다. 사상에서 구덕산 중턱을 관통하는 터널을 지나 대신동 언덕길을 내려올 때 복병산 능선 너머로 부산타워의 얼굴이 보인다. 동서고가로를 달릴 때에도 차창 저 너머로 황령산 봉수대에서도, 해운대 달맞이고개 해월정 위에서도 부산항의 해무 위에 둥둥 떠 있는 부산타워가 보인다.

국제시장을 배회하다 일순간 지리 감각을 잃었을 때 눈을 들어 주위를 살피면 골목 그 끝에 부산타워의 하얀색 원통 기둥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항구의 등대처럼 흘립하고 있다. 만약 그때가 늦은 밤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부산타워는 칠흑의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색 몸 위에 무지개 불빛을 한껏 맞으며 여전히 그 골목 끝에 서 있다. 그때 부산타워는 고대의 신전처럼 엄숙하다.

원양에서 부산으로 돌아올 때에도 부산타워는 북극성처럼 우리를 부산으로 이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고 해도 검은 수평선 위로 한 점의 불빛으로 나타나 거기가 고향 부산이라고 알려준다. 부관페리를 타고 부산으로 올 때다. 온 밤을 꼬박 새워 현해탄을 건너는 페리선의 엔진 기관음은 여행자의 밤잠을 설치게 한다. 밖이 보이지 않는 선실에서는 엔진 소음만이 항해의 알리바이를 준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엔진이 멈춘다. 순간 칠흑의 바다는 심해에 가라앉는 납덩이처럼 무거운 정적이 된다. 눈을 들어 시계를 본다. 새벽 3시. 그때 우리는 부산의 외해에 도착해 있다. 갑판에 나가면 짙은 산그늘을 배경으로 한 줄기의 불빛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부산타워의 전망대 불빛이다. 그때 부산타워는 부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때서야 우리는 비로소 따뜻한 침소에 양말을 벗고 깊은 잠에 든다. 배에서 내려 지상에서 120m 위로 솟구친 부산타워를 고속엘리베이터로 올라 전망대에 들어서면 부산이 발아래에 펼쳐진다. 손을 뻗으면 손긑에 닿을 듯 부산항이 가까이 보인다. 먼 바다 수평선 위에는 일본 대마도가 신기루처럼 둥둥 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부산타워는 부산의 시선이다. 롤랑 바르트가 파리의 에펠탑을 보는 대상이면서 보이는 시선'이며 '오브제이면서 시선', '능동적이면서 수동적인 완전동사', '시선의 양성'을 지닌 '완전한 대상'이라고 했다. 부산타워야말로 그렇다.

부산에서 부산타워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봄이나 여름, 가을이나 겨울이든, 계절이 아무리 바뀌어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바다나 강, 산처럼 용두산 위에 서 있다. 부산에서 부산타워는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부산타워는 이미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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