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원문 http://osen.mt.co.kr/news/view.html?gid=C1103190021

'위대한 탄생', 심사의 개연성이 필요한 이유

이은미의 멘토스쿨에서 권리세와 김혜리가 합격한 건 예정됐던 일일까. 이진선과 박원미가 탈락한 것을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반면 상대적으로 가창력은 물론이고 발음 문제까지 고스란히 갖고 있는 권리세가 합격하고, 연습에 있어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던 마산 일급수 김혜리가 합격한 것에 과연 대중들은 얼마나 공감하고 있을까. 물론 김혜리는 후반부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리세의 합격은 이미 거센 논란에 직면할 정도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가창력에 있어서 경쟁자인 이진선과 박원미가 월등히 뛰어났지만 그녀들이 탈락한 것은 결국 외모가 평가 기준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함께 심사를 한 윤일상은 '스타성'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서 '스타성'이란 기준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도대체 왜 이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이은미는 김혜리와 권리세를 뽑았던 것일까.

아무리 전문가들이 하는 심사라고 해도 노래에 대한 판단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누가 봐도 출중한 가창력과 스타성을 가진 후보라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겠지만 '위대한 탄생'의 경쟁자들은 색깔이 조금씩 다를 뿐 실력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일르 발견하기 어렵다. 따라서 멘토제를 갖고 있는 '위대한 탄생'에서 멘토들이 저마다 갖는 음악에 대한 생각과 거기에 맞는 자기만의 심사기준에 대한 일관성은 중요하다. 이것이 흔들리게 되면 대중들은 공감하기 어렵게 된다.

멘토의 심사기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요해지는 건 그 개연성이라는 얘기다. 김태원의 심사기준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에 맞춰졌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내는 멘티들과의 이야기는 심지어 감동을 주었다. 방시혁의 심사기준은 현 기획사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래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투입되었고 심사도 기성 음악 프로그램에서 진행했다. 그 이야기는 가수가 된다는 게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공감을 일으켰다.

이은미의 산사 음악회 콘셉트가 덧붙여진 멘토스쿨 역시 1백 명의 스님들 앞에서 벌어진 중간평가까지는 나름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자신의 소리를 찾는다'는 콘셉트와 숨김없이 솔직하게 평을 내놓는 스님의 말씀은 이색적이면서도 신선했다. 하지만 그런 노래에 중심이 맞춰진 과정을 거친 후, 결국 스타성에 맞춰 최종 후보를 뽑는 모습은 일관성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은미는 지금껏 그 누구보다 가창력을 최고의 심사기준으로 제시하며 심지어 돋설에 가까운 심사평을 내놨던 멘토가 아닌가.

이은미의 멘토스쿨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일관성을 결여했고, 그로 인해 공감을 잃었다. '위대한 탄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스토리가 갖는 공감이다. 후보자들이 경쟁과정과 선발과정에서 보여주는 공감 가는 스토리가 그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2'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토리가 일관됐기 때문이다. 가창력을 중심으로 공정하게 심사가 이루어진다는 프로그램의 이미지는 그래서 '슈퍼스타K'의 정체성이 되었다. 과연 이은미 멘토스쿨은 '위대한 탄생'만의 일관되고 개연성 있는 심사과정을 그려냈을까. 왜 우리는 그 결과를 공감하지 못할까.

정덕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분명 논란은 논란이었다. 어떻게 보면 '오심'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물론 난 지금에서야 어제 방송을 보고 있는 중이지만. 그 동안의 권리세 관련 논란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

도대체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 해야 될까?
방송국은 방송국대로, 시청자는 시청자대로 서로 갑갑하다.

이렇게 된 이상, 권리세가 생방송 무대에서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더 중요하게 되었다. 
근데 사실 그 이상 올라 갈 수 있을까? 정말?



이 논란과는 별도로 정말 눈여겨 보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사람들의 가열찬 도전.
그 누구의 인생이기도 하니까.

프로가 되는 길이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여실히 보여줘서
참 슬프고 처절하고 그렇지만 그만큼 큰 희열이 다가온다.

논문계의 프로가 되는게 이렇게 힘들줄이야.
되고 말아야지.


이은미씨가 마산일급수 양에게 방금한 말을 끝으로...


"니가 오백번 들어서 안들리면 천 번을 들어야 되구.
천 번 들어서 안되면 천 오백번, 이천 번을 들어야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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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필사의 손부림 2011. 3. 18. 23:16
기사원문 http://www.segye.com/Articles/News/Opinion/Article.asp?aid=20110318004189&cid=

마치 폭력적인 오락을 많이 하면 폭력성이 커진다는 주장 처럼 약간의 비약 같은 느낌도 들지만, 영화인의 입장에서라면 생각해볼만 한 이야기 같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하는 나 또한 이번 지진/해일 사태를 하나의 스펙타클한 재난 영화 보듯이, 흥미 위주로 대한 점도 있기에 일견 타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결국 영화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문제인 것이지. 창작의 방향에 대해 얼마나 제약을 가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선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논지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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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http://www.fnnews.com/view?ra=Sent1801m_View&corp=fnnews&arcid=00000922248359&cDateYear=2011&cDateMonth=03&cDateDay=17

커피 애호가들은 지난 8일 울화통이 터져 죽을뻔했다. 글쎄 커피 한잔의 원가가 123원이란다. 그런 커피를 카페에서 3천원~4천원 이상 주고 사먹다니! 커피 전문점은 300배 이상의 폭리를 보는데 직장인들은 그것도 모르고 "아, 커피 향내 정말 죽여주는 구먼"하며 봉 노릇을 한게 아닌가.

그 배신감에 치를 떨게한 원가 계산은 어느 심심풀이 호사가가 한 것도 아니고 얼뜨기 아마추어가 한것도 아니다. 위풍당당 대한민국 관세청이 한것이다. 원가 계산의 근거가 담긴 문서 이름도 왈 '커피 교역으로 본 우리나라 커피시장'이다. 말하자면 우리 나라 커피 시장의 미주알 고주알을 다 캐 낸 문서다. 어찌 신뢰가 안갈수 있단 말인가.

관세청 계산은 이렇다. 2010년 한해동안 우리나라의 커피 수입량은 11만7000톤, 수입대금은 4억2000만달러, 커피 한잔을 10g으로 치고 수입량을 잔수로 환산한 다음 수입대금을 나눈다. 거기서 나온 값(달러)를 환율시세에 따라 원으로 환산하면 123원이 되는 것이다.

아직도 분이 덜 풀린 사람은 계산기를 두드려 검산하기 바란다. 2010년 한해 성인 한명이 마신 커피가 312잔(2005년엔 253잔)이나 된다니까 결코 의미없는 계산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커피전문점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은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단순원가는 123원이라도 거기에 가공비, 점포 임대료, 인건비, 브랜드에 지불하는 로열티 등등을 합치면 현재 가격이 결코 불합리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다 카페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멋스런 '분위기 값'은 안 치냐는게 이들의 소리없는 항변이다.

그렇다. 전면 투명창으로 들여다 보이는 '시 스루(see-through)' 도시남 도시녀의 멋진 만남. 테이크 아웃이 증명하는 현대적 일상성, 감히 123원으로 우리의 장미빛 인생을 비하하지 말라. 커피 충성파의 분노는 어느덧 사랑으로 승화한다. 하기야 거룩한 멜로디만 만든 ㅎ바흐도 '커피 칸타타'를 짓고 "오, 커피여 1000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구나"했다지 않은가.

커피 애호가의 충성이 이렇게 지극하다면 커피값 시비는 카페의 부전승으로 끝날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지금 오피스 워커들은 '직장인 5대 물가고'에 잔뜩 화가 나있다. 그것은 1전셋값 2점심값 3스마트폰 사용료 4휘발유값 그리고 6커피값이다. 업무상 스트레스에 더하여 생활물가고까지 몰아치니 속은 내내 쓰라리다.

내 일신이 이렇게 고단한데도 변함없이 카페인에 충성을 바치라고? 그러면 내 위장은. 내 혈압은 만신창이가 되란 말인가. 현란한 실내 디자인으로 바가지 요금을 호도하는 너 커피여 잘 만났다. 이 참에 너와 나는 결별이다. 이렇게 전세가 역전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국제 원두 커피값 상승세가 커피 충성파를 겁주고 있다. 뉴욕의 아라비카 원두, 런던의 로부스타 원두값이 모두 34년래 가장 높은 가격이란다. 그 원인은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의 원두 작황이 아주 나빴기 때문이다. 재고도 40년만의 최저 수준이다.

작황부진의 원인은 기상이변에 의한 혹한 때문이라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브라질 커피 수확이 시작되는 6월까지는 가슴을 졸어야 할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쓰고 보니 거의 자료에 근거한 일기에 가깝네.

커피가 비싸긴 비싸지.

아 요즘 물가 진짜 너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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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4382
 

지난 3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벌어진 대통령의 무릎기도 사건에 유독 방송이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한 데 대해 "MB시대의 방송들이 권력자의 종교, 종교 권력의 허물을 눈감아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적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일본 대지진 참사에 대해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하나님의 경고'라고 말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로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발언은 한 교계 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나온 말로, 인터넷 매체와 트위터 등을 통해 빠르게 알려졌다. 비판 여론이 뜨겁게 일었다. 결국 "진의가 잘못 전해졌다"는 교회 측 해명이 나왔고 문제의 발언은 인터뷰 기사에서 빠졌다.

개신교 목사의 비상식적 발언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5년 서남아시아 지진해일 참사 때도 있었다. 당시 김홍도 목사(금란교회)는 "비기독교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했다.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휩쓸어 6만여명이 희생됐을 때도 강성봉 목사(일산새중앙교회)는 "우상숭배에 대한 주님의 심판"이라 했다.

이쯤되면 개신교의 일부 그릇된 종교관이 반복적으로 사회 갈등을 조장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발언을 접한 사람들 상당수가, 교인이든 아니든, 비판을 넘어 분노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에서만큼은 아무 일이 없다. KBS가 정오 뉴스에서 짧게 보도했고, 리포트 제작을 한 방송은 YTN뿐이었다. MBC와 SBS에는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다.
 
일본 대지진 참사는 언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사건이다. 특히 이웃 나라의 비극을 선정적 얘기 거리로 전락시키고 이해타산을 대입하는 사회 일각의 몰지각한 시각에 대해 언론은 이미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 비판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나님의 경고'라는 발언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당연히 언론 보도의 대상이 된다. 신문과 인터넷 매체들은 그리하고 있지만 유독 방송만 침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개신교에 부담이 될 만한 기사에는 40초만 할애한 KBS는 대통령의 'UAE 유전' 보도에 생중계 15분, 메인뉴스 리포트 네 꼭지를 봉헌했다. 조용기 목사 발언에 침묵했던 MBC와 SBS도 대통령의 치적 홍보에는 지기 싫었는지 메인 뉴스에서 리포트 세 꼭지씩을 틀었다. 지상파 3사가 당일 쏟아낸 열 꼭지의 리포트 어디에도 정부의 일방적 홍보를 견제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받아쓰기와 대통령 띄우기의 '홍보 매뉴얼'에 충실했다. 짬이 없어서, 끼워 넣을 틈이 없어서라는 변명은 솔직하지 않다.

지난 3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길자연 목사는 한민족 반만년 역사를 '우상숭배의 역사'로 규정했다. 지난 8일 PD수첩이 이 문제를 다루려 했지만 MBC가 막았다. PD수첩이 방영되었다면 일본 대지진에 대한 개신교 목사의 망언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방송에 당부한다. 권력자의 종교를 비호하지 말고 비판 기능을 회복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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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진 서강대 교수

새학기가 시작됐다. 매년 이맘 때면 향후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이 연구실 문을 두드린다. 취업이나 진로와 관련된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을 해주지만, 그래도 답답한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취업 기회가 충분치 않은데다 그들의 고민이 좀더 일찍 시작됐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 때문이다. 취업의 문호를 넓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다. 당장 취업을 앞둔 학생들이 그 과제를 담당할 수는 없는 일, 따라서 취업을 앞둔 학생들의 이른바 '경쟁력'에서 고민은 시작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오늘날 많은 학생이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성적에 맞춰 대학에 들어가서 주어진 커리큘럼에 따라 수동적으로 공부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런데 어느새 사회라는 정글에 나가야 하는 시간이 된 것이다. 물론 최근의 캠퍼스는 과거와 다르다. 신입생들도 이른바 '스펙 경쟁'에 관심이 높다. 안타까운 점은 그것 역시 수동적이라는것이다. 남들이 하니까, 그것의 이유와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마치 대학입시를 위해 억지로 공부하듯 새로운 경쟁에 몰입한다.

뛰어난 어학 능력이나 자격증과 같은 스펙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자율적 선택과 판단을 위해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하는 습관은 찾기 쉽지 않다. 어릴 때부터 분석적이고 통계적인 마인드를 길러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계는 과거에 대한 축적된 정보이고, 현재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자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지표다. 통계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사회와 역사를 읽을 수 있다는 의미이고, 그 속에 위치한 '나'를 읽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드시 기능적인 관점에서만 통계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인성적인 측면이다. 서구의 중등교육 과정에서 시행되는 통계교육은 바로 이런 점을 겨냥한다. 통계의 기술적인 측면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자신의 실생활과 자신의 사회적 조건, 예를 들어 취업시장이나 기업의 활동, 그리고 국가의 재정 등에 관련된 통계들을 읽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의 함양이 통계교육의 목적이다. 이러한 통계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올바르게 대화하는 법이다. 통계를 통해 전체적 맥락을 읽어낼 수 있기에 '올바르게 대화할 줄 아는 소통형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의사를 우격다짐이나 폭력으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실으 ㄹ포함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문제를 '대화'로 풀어나갈 수 있는 '소통형 인간'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자율적 판단을 위해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분석하는 습관과 능력의 함양이다. 통계의 설득력이 강한 만큼 특정한 의도에 따라 '조작'될 가능성도 크다. 통계가 '사실'을 반영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떤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자료들이 의도적으로 누락되거나 비교의 준거점이 엉뚱한 것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통계교육은 잘못된 통계들을 가려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 왜곡된 논변에 휘둘리지 않도록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통계는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간주됐다. 일상생활 속에서 많은 통계 자료들을 만나면서도 통계를 남의 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통계를 잘 만드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통계를 읽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어릴 때부터 이러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질 때 자녀들은 '경쟁력 있는 소통형 인간', 동시에 올바른 상황 판단을 하는 시민으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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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말하는 '통계적 사고'라는 것이 이런것인가? 석박사 과정에서 사용되는 통계 방법 다시 말해, 통계적 방법을 활용한 사고 방식도 같은 맥락일까? 

통계는 확실히 얼마든지 의도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료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통계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전부터 관련 도서들을 읽어 보고 싶었는데, 조만간! 읽으시겠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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