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이드북을 보고 유스호스텔이 있다는 지하철역 부근에 내려 '길 헤매기 쇼'와 '무거운 배낭에 깔리기 일보직전 쇼' 두 가지를 번갈아 시원하게 보여준 다음 간신히 유스호스텔을 찾아냈다.



그 결과 그는 민박집에서 만난 여자가 왜 런던을 시시하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오래된 건물들은 신기했지만 너무 많아서 금방 감흥이 떨어졌고 타워브리지나 버킹엄 궁전, 하이드 파크 같은 곳은 그래서 뭐? 하는 느낌만 줬다.

-> 하하 생각해보 나도 좀 그랬던 것 같다. 유명 장소가 시시해지는건 사실 유럽 여행 전체를 통해서 마찬가지였다. 휘황찬란한 궁전, 박물관, 각종 랜드마크에 놀라는 것도 한 두번이지 뭐. 정말 여행은 무엇일까!



파워풀한 기타 소리가 없어서 별로라고 생각한 곡이었지만 사랑했던 베이시스트 여자애가 좋아서 죽던 곡이었다. 
'여기서 들으니 색다르군.'


그녀는 막 고남일을 껴안을 듯이 팔을 벌려 상체를 붙였다가 완전히 안아주지는 않고 조금 떨어졌다. 거기엔 대략 0.3초 정도가 소모되었다. 그것은 머뭇, 이라는 어감보다 0.2초 빠른 것이었다. 그녀는 고남일과 어떻게 끝났는지 순간 인식하는 듯 했다.


고남일이 끄덕이자 미영은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앞장섰다. 그녀의 뒤를 따라 걷자 시시하던 런던이 좀 재미있었고, 더 이상 낯설게 서걱거리지 않았다. 그는 영국 여왕을 만난 것보다 그녀가 더 반가웠다. 그녀는 고남일이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사람들 사이를 익숙하게 헤치며 걸었다. 무단 횡단도 마구 했다.


"기간은 아직 못 정했습니다만."
"최소한 한 달은 있을 거죠?"
고남일은 한 달이란 말에 조금 놀랐다. 그때가지(인쇄된 그대로 썼다. 내가 발견한 오타!!!) 가진 돈으로 버틸 수 있을까 궁금했지만 미영이 런던에 있기 떄문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뭐가 됐든 한 달이라는 구체적인 기간을 먼저 말하자 오히려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돈을 지불하자 열쇠가 주어졌다. 열쇠는 자기 공간이 생겼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물건이었다. 런던에 자기 방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심리적인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관광객에서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고 떠돌이 홀씨에서 땅에 심은 모종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남일은 이것저것 챙겨 넣은 등짝의 배낭에서 '생활'이라는 껄끄러운 단어가 전달되어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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