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자 문인이다. 신기한 태몽을 꾼 부친의 큰 기대에 비해 어린 득신은 둔하고 어눌했다. 열 살에야 겨우 글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첫 단락 26자를 3일을 배우고도 읽지를 못했다. "저런 바보가 있냐"며 수군대도 득신의 아버지는 "이 아이는 자라서 반드시 문장을 떨칠 것이다. 저리 둔하고 미욱하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니 그것이 오히려 대견스럽고"하였다.
스무 살에 득신은 가까스로 글 한 편을 지었다. 이를 본 아버지는 크게 감격하여 "더욱 노력해라. 공부란 과거 급제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격려했다.
그의 독수기를 보면 1만 번 이상 읽은 것이 36편이나 된다. "고금에 학문으로 성공한 선비는 모두 부지런함으로써 이룩하였다. 나는 천성이 둔하여 남들보다 배나 읽었고, 그중 '백이전'을 좋아해서 일억일만삼천 번을 읽었고, 서재를 '억만재'라 이름 지었다." 억은 지금의 십만이다. 가히 미친 독서이다. 두렵고 무섭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득신은 59세에 문곽에 급제했다. 그는 딸을 먼저 여의었는데, 장례 행렬을 따라가면서도 손에 놓지 않고 보았던 글이 '백이전'이었다. 또 부인의 상중에 일가친척들이 '애고, 애고' 곡을 하는데,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의 구절을 읽었다. 득신은 둔하고 느렸지만 꾸준히 읽고 공부한 끝에 말년에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불렸다.
세상에는 똑똑한 이가 너무 많다. 돌이켜 보면 많은 천재와 천재연하는 이들이 한때 똑똑하고 재능 있다는 이름만 얻었을 뿐 후에 전하는 바도, 배울 바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부인은 모름지기 득신의 불퇴불굴 노력하는 자세를 최고의 스승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